이걸 남녀의 연애관계로 봐야할지, 성향 조율의 문제였다고 봐야할지 특히 BDSM의 시초가 된 소설이라 접근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제목의 모피를 입은 드레스는 말 그대로 작중 인물 제베린, 아니 작가의 이상형이라 볼 수 있는 인물이며 당대의 여성상의 이면을 찌르는 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모피를 입고 채찍을 든 폭군 미인은 난폭하고 당당하기만 한 여성을 그리고 있지 않습니다. 적어도 제베린이 현실에서 마주한 여인은 그렇습니다. 제베린은 자신을 홀대하고 지배해줄 여인. 자신을 노예로 전락하게할 여인을 추구하지만현실의 여인은 자신을 노예로 만들 남성을 찾는 존재이며, 그렇기에 스스로를 노예로 자처하는 남자와 다른 남자의 노예가 되기를 원하는 여인과는 애정관계 길게 갈 수 없다는 것을 그리는 듯 합니다.제베린 스스로도 그런 모순을 안고 있는데, 그는 자신을 내쳐줄 여인, 학대해줄 여인을 그리면서도 정작 여인이 냉혹한 면을 보이고 비웃으면 자존심의 상처를 받고 여인을 일부 비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여인은 이런 면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으며, 제베린은 그 스스로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고 자멸하여 소위 치료 를 받고 정상인이 되나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여자 하인을 학대하는 것으로 문제를 단순히 덮어둔 것으로 보입니다. 피 가학이 가학으로 변모하는 시점입니다.여인상의 이면을 찌르긴 했으나 또 다른 여성 추종의 형태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인간의 모순적인 면을 그렸다는 것에 집중하면 심리 소설로 봐도 좋을 듯 합니다."반다!"나는 그녀에게로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고 키스를 하려 한다. 그러나 그녀는 뒤로 한 발 물러서며 위아래로 나를 훑어본다."넌 노예야!""주인님!"나는 무릎을 꿇고 그녀의 가운 자락에 입을 맞춘다."마땅히 그렇게 나와야지.""오! 당신은 너무나 아름다워요."내가 좋은가?"그녀는 거울 앞으로 가더니 흐뭇하고 자신감 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다본다."미칠 지경입니다!"
사랑하는 여자의 노예가 되는 한 남자
마조히즘 을 낳은 소설
마조히즘 의 어원이 비롯된 오스트리아 작가 자허마조흐(Leopold von Sacher-Masoch, 1836~1895)가 1870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모피를 입은 비너스 는 마조흐의 극단적인 감각주의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종의 자전적 소설로, 그의 일생과 문학 전반을 지배한 피학적인 성적 취향이 전형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타인, 특히 여성에게 학대받는 것에서 쾌락을 느끼는 인물들을 그린 마조흐는 실제 삶에 있어서도 사랑하는 여인에게 성난 여왕처럼 모피 옷을 입고 채찍질을 해줄 것을 요구하는 모피를 입은 비너스 의 주인공 ‘제베린’과 닮아 있다. 실제로 마조흐는 곰이나 산적 역할을 하면서 쫓겨다니다가 사지가 묶이고 굴욕스러운 처벌을 받거나 모피를 입은 당당한 여자의 채찍질에 심한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것을 즐겼다. 또 하인 복장을 하고 다양한 종류의 물신과 가장(假裝)에 탐닉하는 한편, 신문광고를 통해 상대자를 모집하여 그 여성들과 계약을 맺고 매춘을 주선하기도 했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 는 마조흐의 이러한 성적 취향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으로, 여주인공 ‘반다’는 파니 폰 피스토르라는 여성과의 관계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며, 소설 속의 친척 아주머니와의 에피소드 또한 마조흐의 실제 경험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인간 본성 속에 잠재된 마조히즘적 쾌락과 사랑의 관계에 존재하는 권력의 역학에 대한 통찰이 모피와 비너스, 노예 계약서, 그리스 남자와 흑인 하녀 등의 환상적이고도 신비로운 모티프로 직조된 마조흐의 대표작 모피를 입은 비너스 는 그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마조흐의 문학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작품이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
부록 / 자허마조흐의 두 개의 계약서
작품해설 / 모피를 입은 비너스 의 세계로의 안내
옮긴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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