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산책


빌 브라이슨은 아이오와 주의 중심에 있는 도시 디모인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책에는 상상 그 이상의 시대였던 ’유년기 미국‘으로의 여행, 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바로 디모인에서 성장한 작가의 눈에 포착된 이런저런 일들이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엄청난 입담을 자랑하는 빌 브라이슨이 자신의 어린 시절인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미국을 향하여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 역시나 재미있다. “1950년대 말, 캐나다 공군이 등척성 운동을 소개하는 소책자를 발간했다. 등척성 운동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 아버지에게 무척 사랑을 받은 운동이었다. 등척성 운동은 나무나 담처럼 단단한 물체를 이용하는데, 다양한 자세로 온 힘을 다해 압력을 가하면서 근육을 단련시켰다. 나무와 담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값비싼 장비에 돈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내 생각에는 그런 이유에서 아버지가 등척성 운동에 관심을 가진 듯하다.” (p.13) 게다가 미국의 1950년대와 1960년대는 그로부터 2, 30년 후의 우리를 가리키고 있기도 해서, 빌 브라이슨의 어린 시절의 미국을 읽는 일과 나의 어린 시절의 한국을 읽는 일이 군데군데 묘하게 겹치니 이 또한 흥미롭다. 그러니까 나무에 등을 부딪치곤 하던 중년과 노년의 사내들의 운동 행위가 캐나다 공군이 소책자로 소개하고 있던 ’등척성 운동‘의 일환에서 시작된 것인가 의심해보기도 한다. (압력을 가하여 밀어내는 것하고 가서 부딪치는 것하고 다르기는 한데...) “... 형은 65센트와 우송료만 부담하고 컬러텔레비전을 즐기라는 <메카닉스 일러스트레이트>에 실린 광고에 혹해서 주저 없이 그 물건을 주문했다. 그리고 4주 후 형은 우편으로 투명한 컬러 플라스틱판을 받았다. 그 플라스틱판을 텔레비전 화면에 테이프로 붙이면 화면이 컬러로 보인다는 설명서와 함께!” (pp.18~19) ’등척성 운동‘보다 확실히 나의 어린 시절을 컬러풀하게 되돌아볼 수 있는 것은 ’컬러 플라스틱판‘이라는 아이템에서이다. 그러니까 우리집을 비롯해 흑백 텔레비전을 가지고 있는 집에서 컬러 텔레비전으로 넘어가기 전에 한번쯤 구매해본 적이 있는 아이템일 텐데, 이 아이템을 알고 있다는 사실로 특정 연배를 (그러니까 어쨌든 사십대 중반 이상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비미국적 활동위원회의 청문회에 출석한 월트 디즈니는 할리우드의 만화가 조합이 열성적인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의 동조자들로 결성됐다고 증언하며, 1941년의 파업 당시 그들이 미키 마우스를 공산주의자로 둔갑시킬 생각으로 자신의 스튜디오를 접수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디즈니는 어떤 물증도 제시하지 않은 채 옛 직원 가운데 하나를 공산주의자라고 지목했다. 그가 교회에 나가지 않고 한때 모스크바에서 예술을 공부했다는 이유가 증거의 전부였다.” (p.172) 하지만 빌 브라이슨은 이처럼 말랑말랑한 아이템만으로 책을 채우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때 그 시절을 짓누르고 있는, 그러니까 갑작스러운 풍요의 시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1953년에 보스턴의 텔레비전 숫자가 욕조 수를 능가하게 되었다는 것과 같은) 묵직하고 어리둥절한 그 시대의 풍경을 (예를 들어 1950년 메카시가 자신의 호주머니에 국무부 공산주의자 205명의 명단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펼치는 데에도 소홀해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전용 텔레비전을 샀을 즈음 내가 텔레비전을 정말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켜두는 것은 정말 좋아했다. 나는 재잘대는 소리와 생각 없이 웃어대는 웃음소리를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텔레비전을 정신 나간 친척처럼 한구석에 켜두고 책을 읽었다. 그때 나는 뭐든 닥치는 대로 읽는 나이였다. 항상 뭔가를 읽었다...” (p.219)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 브라이슨의 다른 책들에 비해서는 즐거운 중구난방의 경험으로 부족하다. 유년의 시절에서 기억을 끌어올리다보니 자신의 아버지를 비롯해 사적인 경험들이 종종 튀어나오게 되는데, 이러한 사적 기억과 역사적 상황을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리도록 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다보니 개인적 경험과 역사적 상황이 서로 다른 사이즈의 바퀴로 굴러가고 있는 것만 같다.빌 브라이슨 Bill Bryson / 강주헌 역 / 발칙한 미국산책 (The Life and Times of the Thunderbolt Kid) / 추수밭 / 350쪽 / 2011 (2006)
빌 브라이슨, 악동 같은 눈빛과 입담으로
미국의 1950∼1960년대 풍경을 되살리다

자전적 회고를 씨줄로, 사회문화사를 묘파하는 유쾌통쾌한 직설을 날줄로 엮어낸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산책 은 작가의 유년기 기억 속에 사회상을 펼쳐낸, 자전적 역사 에세이이다. 20세기 한가운데(1951년, 미국 대륙 한가운데) 아이오와 디모인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일원으로 태어난 빌 브라이슨. 그가 ‘선더볼트 키드Thunderbolt Kid’라는 페르소나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 자신과 미국의 1950∼1960년대를 생생하게 되살렸다.

원자폭탄의 위력에 매료돼 방사능 낙진마저 반겨 맞았던 원자력 부흥의 시대 분위기, 반공 이데올로기를 조장했던 정치 사기극, 소련과의 우주경쟁, 억압적일 정도로 성을 금기시하던 풍습, 세상의 모든 신상품을 소비하기 위해 더 일해서 더 많은 것을 사는 쪽을 택 하는 길을 택한 미국 중산층…. 그리고 원자변기·미사일 우편물·텔레비전을 시청용 의상·엑스레이로 발 크기를 측정하는 구둣가게 등 상상 그 이상의 상상력이 현실화되었던 ‘유년기 미국’이 위트가 담긴 신랄한 문체 속에 되살아난다.


서문 평범하지만 특별했던 그 시절을 기억하며
01. 풍요의 시대
02. 키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03. 우리는 모두 영웅이었다
04. 모든 꿈이 가능했던 시대
05. 소박하지만 모두를 열광시켰던 놀잇거리들
06. 섹스 그리고 호기심 천국
07. 핵과 공산주의 : 코미디 혹은 공포
08. 철없던 시절의 철없던 학교 풍경
09. 가족이란 이런 것
10. 미국 가족농업의 마지막 황금기
11. 미국도 안전지대일 수만은 없다
12. 우리들만의 천국
13. 행복했던 시대의 끝자락에서
14.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