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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작가들의 유유자적 여행기


유유자적(悠悠自適) : 속세를 떠나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마음 편히 삶.이 책을 쓴 찰스 디킨스와 윌키 콜린스에서 윌키 콜린스는 잘 모릅니다. 잘 생각해보니 찰스 디킨스도 잘 모르는군요. 그래도 찰스 디킨스 소설은 영화뿐 아니라 여러가지로 만들어져서 아주 모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책은 아직 못 봤습니다. 이번이 처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찰스 디킨스는 식구들 모두와 이탈리아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써서 책으로 내기도 했더군요. 사실은 그 책 조금 보다가 말았습니다. 그 책도 이 책과 비슷한 형식입니다. 여행기는 거의 수필에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찰스 디킨스는 소설처럼 쓰더군요. 네, 이 책도 소설 같습니다. 게다가 두 사람 이름도 프랜시스 굿차일드(찰스 디킨스)와 토머스 아이들(윌키 콜린스)이라고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문학을 부인이라 했다는 거예요. 거기에 매여 있는 두 사람인데 달아난 겁니다. 이것은 그저 설정입니다. 달아났다면서 그것(문학, 이 글도 문학이라 할 수 있겠죠)을 쓰다니 말입니다. 어쩌면 19세기에는 어딘가에 간 일을 그대로 쓰기보다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을 더 좋아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제가 모르는 것이고 지금도 이렇게 쓰는 사람이 있을지도. 제가 세상에 나오는 책을 다 보는 것은 아니니까요.두 작가가 게으르다는 말이 있는데 토머스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같이 게으릅니다. 하지만 프랜시스는 좀 다릅니다. 빈둥거려도 무엇인가를 하더군요. 프랜시스는 자신이 빈둥거린다는 느낌을 받아야 합니다. 가만히 있었을 때 빈둥거린다고 여기지 않더라구요. 북잉글랜의 컴벌랜드에 갔을 때 프랜시스는 캐록 산을 올라가면 빈둥거림의 성취가 절정에 이를거다 생각했어요. 토머스는 그 산에 올라가고 싶어하지 않았는데. 비가 내리는데도 산에 올라갔습니다. 비가 오면 나중에 가야 할 텐데 말입니다. 결국 비 때문에 안개가 짙어졌어요. 내려올 때는 길을 잃고 토머스는 발목까지 삐었습니다. 프랜시스가 나침반을 가지고 있었는데 쉽게 부서졌습니다. 헤매면서도 제대로 산을 내려오고 여관으로 다시 갔습니다. 조금만 늦었다면 토머스는 쓰러졌을 텐데 다행하게도 산밑에 이르렀답니다.토머스를 치료해준 의사는 프랜시스한테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여기에는 추리소설 같은 게 두 편 실려 있습니다. 하나는 윌키 콜린스가 쓰고 다른 하나는 찰스 디킨스가 썼다더군요. 그렇게 이야기 듣는 것을 보니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 시리즈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하나는 죽은 사람이 살아난 이야기고, 다음은 저주에 걸린 유령이 나오는 이야기예요. 처음 이야기에 나온 그 사람은 죽은 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대로 죽은 사람으로 처리했다면 큰일이었겠지요. 여행 간 곳에서 그곳에 전해오는 이야기나 처음 만난 사람의 신기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그런 일이 한번도 없었지만요. 토머스는 발목이 아파서 거의 누워서 지냈습니다. 프랜시스는 혼자 밖으로 나가 돌아다녔습니다. 함께 가도 서로 따로따로 지내기도 해야겠죠. 아파서 혼자 가만히 있으면 섭섭할 수도 있을 텐데 토머스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나이 차이는 많이 나지만 두 사람이 친하다는 게 느껴졌습니다.홀로 남아있던 토머스는 자신이 성실하게 지냈을 때 안 좋아진 일을 떠올리고는 앞으로는 게으르게 지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캐록 산을 오를 때도 쉬었다면 발목을 삐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19세기여서 그렇게 복잡한 것은 없을 것 같은데, 기차가 오고가는 역은 바빠 보이더군요. 차는 언제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타고 다녔는지 모르겠는데, 이때는 마차가 더 많이 다녔습니다. 빨리빨리 지나가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마가 열리는 주간의 돈 캐스터는 시끌벅적하더군요. 거의 잔치 분위기였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숙소는 예약하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볼거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 안 좋은 게 있더군요. 사람을 동물처럼 보여주는 겁니다. 그때 영국에도 백인 우월주의가 한창이었을 테지요. 프랜시스는 경마를 보러갔지만 토머스는 가지 않았습니다. 발목이 아픈 것도 있었지만 토머스는 말을 싫어했어요. 말이 배신해서요. 순한 말이라 해도 어떤 일이 닥치면 아주 바뀌기도 합니다. 말이 초식동물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지금 살고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가면 그곳 풍경과 사람을 만나게 되겠지요. 처음 가는 곳이니 더 많이 보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빡빡하게 일정을 짜는 것보다 빈둥거리면서 다니는 것은 어떨까요. 빨리 돌아가는 세상이지만 그 속도보다 천천히 가 보는 것도 좋을 거예요. 어딘가에 떠나는 것은 바쁘게 사는 동안 쌓인 안 좋은 것을 풀고 싶어서기도 하잖아요. 낯선 곳에서 무엇인가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그곳에 버리고 오는 것도 있어야겠지요. 살아가는 게 그런 것 같아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거.희선
박람강기 프로젝트는 장르소설을 탐독하는 독자들에게 여러 종류의 글, 이를테면 서간문, 기행문, 평전 등을 널리 소개하자는 취지로 장르소설가들이 쓴 뜻밖에 반가운 에세이를 모은 시리즈이다. 이 책은 그 첫번째 시리즈로, 영문학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찰스 디킨스와 미스터리 소설의 초창기에 지대한 공헌을 한 윌키 콜린스의 여행 에세이이다.

1857년 가을, 번잡한 도시와 자신들의 주인인 문학이라는 부인으로부터 대탈주를 감행한 찰스 디킨스와 윌키 콜린스는 북잉글랜드를 향해 도보 여행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이 계획은 빛의 속도로 좌초되어 처음부터 기차를 타게 된다. 여행 도중에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올라간 캐록 산에서는 조난을 당할 뻔하고 설상가상으로 윌키 콜린스는 영혼과 육체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느긋하고 유유자적한 여행을 하자는 야심찬 그들의 목표는 마냥 순조롭지만은 않은데…….

한시라도 빈둥거리고 있지 않으면 초조해지는 이들의 게으르고자 하는 노력이 담긴 눈물겨운 분투기. 나태하고 느긋한 여행기가 갖춰야 할 미덕들을 갖춘 작품. 또한 두 작가는 도착한 곳들에서 두 개의 유령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공포와 스릴을 다루는 데에서도 두드러진 재능을 보였던 대가들이 들려주는 기이하고 신기한 이야기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덧붙여 이 작품에는 이들의 게으르고자 분투하는 모습은 물론, 과거에 부지런했기에 닥친 재앙들에 대한 회고까지 담고 있다.


1장
2장
3장
4장
5장
옮긴이의 말
편집부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