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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부 양말처럼 남김없이(100쪽)"   1. 감상      놀라운 일이다. 영어 속담 외우기 대회를 저주하던 내가 외국 관용어 모음집을 좋아하게 됐으니.      ‘슈퍼맨이 돌아왔다’ 293회의 부제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였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할 수 없는 천방지축 아이들의 말을 기계가 번역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이 말이 짧아서 표현할 수 없는 속내, 둔한 어른들이 놓치고 마는 사랑스러움, 그 많은 순간을 가시적인 매체로 담을 수 있다면. 이 책을 읽은 어느 편집자가 애타는 마음으로 쓴 제목일 것이다.      막상 성인이 되어도 아쉬운 건 여전하다. 딱 맞아떨어지는 말이 없어서 중언부언하는 때가 있다. 꽤 자주. 말을 덧붙일수록 처음의 느낌과 달라져 횡설수설하게 된다. 상대방의 눈에 피로가 떠오르면 끝장이다. 영어로 말할 때는 대부분 그랬고, 한국말을 할 땐 종종 그랬다. 나의 짧은 어휘력... 이 책은 나에게 ‘그럴 줄 알고 네가 알 법한 나라는 다 다녀왔어! 한 문장으로 끝내주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요 예쁜 것!      이 책을 읽으면 52가지 중에 반드시 하나 이상 마음에 드는 문장이 생긴다. 나는 “우체부 양말처럼 남김없이” 사랑에 빠진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콜롬비아 스페인어다. 저자의 추측에 내 사견을 더하면, 양말이 남김없이 닳은 줄 모르고 편지를 나르는 우체부처럼 연인에게 내달리는 성마른 마음의 모양새다. 요즘 식으로 하면 ‘핑프(핑거 프린세스) 손톱이 빠지도록’ 사랑한다는 말과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이렇게 깊은 뜻을 딱 세 어절에 담다니. 왠지 스페인어에 대한 내적 친밀감이 자란다. 흠. 마음에 들어.    그러고보니 우편배달원은 콜롬비아든 우리나라든 바쁘긴 매한가지인가 보다. 우체국 택배, 쿠팡, 마켓컬리... 모두 수고 많으십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우체부 양말처럼 남김없이”라는 말을 쓰겠습니다.      평소에 뭐라 말하기 힘든 애매함이 입 안을 구르는 느낌이 든다면 이 책에서 사이다를 찾아보길 권한다. 이 세상 어느 나라든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공감할 수 있다. 의외로 상상력이 폭발해서 말이 술술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말이 없었구나, 다른 나라에는 이런 말이 없나보다 하며 시간을 보내면 생각의 공백이 메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 전에는 한 문장에 넣지 않던 단어들의 새로운 조합을 만날 수 있다.     가나어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를 뭐라고 말할까? 52쪽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조금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말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을 만든다. 문화가 된다. 말을 만드는 사람들은 소설가, 평론가, 학자 등 글을 생계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소설가를 예로 들자면 그들은 말을 요모조모 뜯어보고 엉뚱하게 재조립하여 말을 만드는데, 그렇게 만든 이유를 듣고 보면 설득력이 있다. 마술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상상력이 퐁퐁 솟을 것 같다.     나는 요즘 내 상상력의 빈약함을 통감한다. 뜻을 짐작할 수 없는 신조어가 너무 많다. 핑프(핑거 프린스/프린세스), 슬세권(슬리퍼로 생활이 가능한 세력권), 갑통알(갑자기 통장을 봤더니 알바를 해야 할 것 같음) 등등 누가 생각했는지 창의력이 넘친다. 웃프다. 평소에 생각 못한 단어 연결이 신기하다. SNS와 한국 사람이라는 연결고리만으로 공감대를 형성해서 새로운 말을 공유한다. 우리나라 판타지 작가 이영도가 ‘공주’와 ‘육질’, ‘용’과 ‘미식가’라는 연상작용을 만들기 위해 중단편 소설 <에소릴의 드래곤>을 써야했는데, 요즘은 140자 정도 글로 통한다. *<에소릴의 드래곤>: 곱디곱게 자란 공주가 육질이 좋을 거라고 추측한 미식 드래곤이 공주를 납치하여 생기는 이야기.      나는 그런 유행어를 만들지는 못해도 이 책을 공유하는 연인과 새로운 신호를 쓸 수 있게 됐다. 묘하게 내 생각의 틀을 하나 깬 것 같은 성취감이 생긴다. 나도 이러다가 제2의 하상욱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3초만 기대해본다.   1) 우울할 때: “바 선생이 왔어(나)”-“떡볶이 먹을래?(연인)”2) 면접을 앞두고: “늑대 아가리!(연인)”-“늑대 꺼져!(나)”       2. 책의 이모저모     1) 띠지, 광고 문구   띠지가 없었다. 표지가 너무 귀여워서 더 이상의 광고가 필요 없었을까. 가로로 긴 책에 가로 띠지를 끼워두자니 불편했던가. 세로 띠지를 쓰자니 제목을 가려서 마음에 안 들었나. 표지 뒷면에는 추천사 1도 없이 광고 문구가 딱 8줄 있다. 다양한 문화권의 여섯 가지 표현 그리고 소개 글 딱 한 문장으로 마치는데, 깔끔하고 단순한 디자인이 시원시원해서 좋았다.     2) 표지    밝은 바탕에 잼, 벌, 양파, 나뭇잎, 자전거, 과일 등 손그림을 그려 넣어 아기자기하다. 아래에 위를 올려다보는 사람이 그려져 있다. 눈썹이 으쓱 올라가고 입꼬리를 올린 것이 내 얼굴이랑 같다. 헷, 귀여워!    3) 책 구성    이 책은 ‘들어가며’, 본문, ‘감사의 글’, ‘옮긴이의 글’, ‘지은이 소개’, ‘옮긴이 소개’로 구성되었고 목차는 없다. 설명 한 쪽, 그림 한 쪽. 딱 한 장에 관용구 하나를 보여준다. 루시드폴이 번역했던 1권과 마찬가지로 관용어가 총 52개 있다. 목차를 만들자니 52개나 되고, 어구가 긴 것도 몇 있어서 깔끔하지 않았을 것이다. 표지나 내용물이나 일관되게 간결하고 단도직입적이다.     4) 작가 소개    사진이 멋지다. 작가의 옅은 파란색 눈이 부리부리하게 정면을 응시한다. 보기에 따라 무표정한 듯도, 살짝 웃는 듯도 하다. 바나나 우유보다 조금 더 채도 높은 종이에 까만 프로필 사진이 삽입되었다. 강한 인상을 줄 법도 한데. 책의 자유분방한 분위기 때문인지 호기심이 가득해 보인다.     5) 옮긴이 김서령    소설가이자 번역가로, 소설, 산문, 장편소설을 출간하고 빨간 머리 앤과 에이번리의 앤을 번역했다. 채널예스 ‘불후의 칼럼’의 “김서령의 우주 서재”에서 이 책을 소개했다.     그녀는 ‘웹디자이너 K’와 치맥을 즐기러 가다가 우연히 아픈 참새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 후 K가 참새를 알뜰살뜰 챙겨 방생에 성공하는데, 김서령 작가님은 그 새를 처음 만났을 때 반짝이던 K의 눈빛을 티암 이라고 했다. 책을 읽을 땐 그냥 술술 넘어간 부분인데 다시 찾아봤다. 예쁜 말이다. http://ch.yes24.com/Article/View/32218 

세상에서 하나뿐인 기발하고 재미있는 표현들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두 번째 이야기 세상에 하나뿐인 낯설고 아름다운 낱말들 로 우리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의 작가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가 이번에는 더 기발하고 재미있는 표현들과 함께 돌아왔다. 머릿속에 귀뚜라미 한가득 이란 말은 온통 황당한 생각들로 꽉 찬 머리를 두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하는 말, 라트비아 사람들은 터무니없거나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면 작은 오리 후후 불고 있네 하고 통박을 놓는다. 세르비아 사람들에게 코로 구름을 헤집는 중 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그건 당신이 꽤나 으스대고 있었다는 이야기, 러시아 사람이 가재가 겨울을 어디서 나는지 알려줄까 했다면 정신 바짝 차리는 것이 좋다. 하지만 저기엔 춤추는 곰이 있다고! 하는 독일 사람을 만났다면 냉큼 따라가고 볼 일이다. 하는 일마다 잘 풀리고 분위기도 끝내주고 뭐랄까, ‘핫’한 곳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니까.알알이 빛나던 첫 번째 이야기가 세상 곳곳에 숨겨진 진귀한 과실들을 조금씩 맛보게 해주었다면 이번 이야기에는 그 과실을 가꾼 사람들과 말[言]이 자라난 환경이 함께 들어 있다. 말이란 단순한 단어들의 조합이 아니고, 누가 어떤 상황에서 그 말을 했느냐에 따라 좀 더 재미있게, 감동적으로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이건 (서문에서 작가가 밝힌 바대로) 단어에서 표현으로, 넓은 의미로 말로 확장되면서 더 많은 것을 껴안은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더 기발하고 더 재미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