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한임경섭꼭 자정 넘어서야 애인은잠도 안 자고자라지도 않은 발톱을 깎았다이만큼이 내 어제야창밖으로애인의 눈곱만한 시간들이 던져질 때마다발톱 먹은 쥐가 둔갑해 나타날 거라는해묵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떠올렸지만나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어둠 속에 이미 아버지가 많았다발톱이 버려질 때마다쥐보다 내가 더 싫다며애인은 꼭 비명을 지르고나는 사랑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핀잔이오늘을 잉태한다고도 믿었지만한 번도 말하지는 않았다고백하자면 애인은발톱 깎는 시늉에 바쁜 날이 잦긴 했었다창밖으로시늉을 던지면그 하얗던 어제가 밤보다 까맣게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던 임경섭 시집 《죄책감》중에서 p . 38 , 39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창 밖으로 내던질 수 있는 하루가 있기나 하면 좋겠어있는 척 하는 것에도 지쳐등돌리는 하루가 톡톡 톡 깍아내서 버릴 수라도 있음그럼 좋겠어버려질 수나 있음 좋겠어지난 날도 앞으로 쌓일 오늘도아무것도 버리지 못한 사람은창 밖으로 스스로나 내 던질까..그래도 뭘 버릴 수 있는 게 좋지척, 한 시간이라도 버리니버릴게 남은 사람은 좋지하는 동안은 뭔가 있는 거니까아직 남은 거니까기가쿠의 하이쿠에선ㅡ 내것이라고 생각하면우산위의 눈도 가볍게 느껴지네 ㅡ라던데...붙어 있는 숨조차가 무거워 한 숨 만 내쉬는 이쪽은등돌리며 덜그럭 무거운 몸은손톱만큼도 발톱만큼도살아낼 변명조차 없는 어떤 텅 빈 상태
애도의 무분별함에서 무성해지는 시의 언어로
2008년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초점을 잃지 않고 삶 전체를 향하고 있다 는 평을 받으며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임경섭 시인의 첫 시집이다. 등단 당시 임경섭 시인에 관한 심사평은 잘 썼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데, 심사위원들은 이 ‘잘 썼다’에 오랜 습작의 흔적이 역력하다는 뜻이 담겨 있노라 밝혔다. 오랜 습작의 흔적과 더불어 등단 후 6년의 흔적이 쌓인 시들은 삶 속에서 제 부재의 흔적을 되짚게 만드는 것들의 공간을 구축한다.
이 시집에서 죄책감이라는 단어는 마지막 표제작인 시의 제목으로 등장할 뿐이지만, 그러한 부재의 형식으로 마흔다섯 편의 시를 관통하고 있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서 불쑥불쑥 화자에게 튀어나와 진정한 애도의 가능성에 대해 묻게 만드는 죄책감은 비존재의 언어를 찾아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으로, 멀어짐을 통한 새로운 마주침으로 나아간다.
시인의 말
우두커니
김은, 검은
심시티
시뮬레이션 1
노래는 메아리치지 않았네
휘날린
무성한
마카를 알아
건축학개론
레크리에이션
내부순환도로
애와 인
이, 야기
그렇게 어머니를 만나야 했다
밑 빠진 독에
후유증
척, 한
너의 장례
나리 나리 개나리
불온한 탄성
제자리뛰기
클래식
졸린
몽타주
시뮬레이션 2
패인
무분별한 애도
탄성잔효
정체성
꿈이 꿈을 대신한다
이를테면 똥 같은 거
나무 아래 보복
점멸
가을
들어선
그러고 보니
사이렌
베일
새들은 지하를 날지 않는다
안개
김대리는 살구를 고른다
부서진 반가사유상
십자가
흩날린
죄책감
해설 | 무성한 여자들로부터
| 이광호(문학평론가)
카테고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