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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이야기


여우이야기.제목부터 느낌이 팍팍 오는 모리미 도미히코의 기담소설.기담의 뜻을 대강만 알지 확실하게는 몰라 책을 펴기 전‘기담’이란 단어를 인터넷에 검색해봤다.‘이상야릇하고 재밌는 이야기.’정말이지 이 책에 딱 맞는 수식어가 아닐까,하고 생각을 한다.“터키는 희한한 나라야.남자는 수염투성이 아저씨나 어린 애들밖에 없어.”“그게 정말입니까?”“이유가 뭘까?사춘기가 지나면 순식간에 아저씨로 변해 버리나?” - 95p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기기괴괴하고 오싹한 느낌이 가득한 공포물 같지만,책의 중간 중간 작가의 위트있는 대화를 찾아볼 수 있었다.모리미를 처음 접한 작품인‘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라는 책에서도 상당히 유쾌하고 재미있는 화법을 많이 사용했는데.이 작품에서도 분위기를 흐리지 않는 정도에서 인물간의 유머러스한 대화가 틈틈이 엿보인다.물론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지만,기괴한 이야기를 매끄럽게 이어가기 위해선 잠깐의 농담도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전 하찮은 놈입니다”라고 중얼거렸다.아무런 맥락도 없는 말이었다.열에 시달려 마음이 약해지다 보니 그저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그렇군.”선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나도 하찮은 놈이긴 마찬가지야.” -132p여우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중,단편 소설을 엮어놓은 소설집이다.제일 처음에 나오는 단편 소설인‘여우이야기’를 읽고 두 번째 단편인‘과실 속의 용’을 중간 정도 읽었을 때야 깨달았다.두 개의 단편이 어딘지 모르게 연결되어있다는 것을!엄청 직접적인 연결도 아니고,같은 등장인물이 나오거나,유사한 사건이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다른 단편의 주인공이 사용하거나한 물건이 언급되거나,다른 단편에선 주인공이 열심히 활동한 지명이,은근슬쩍 도시전설 수준으로 회자되거나 하는 정도의 연결이지만,그런 작은 연결고리를 찾는 것도 나름의 재미였으며,싱크로나이츠를 느낄 때와 같은 약간의 쾌감도 동반했던 것 같다.너무 힌트를 스리슬쩍 던지는 작가가 어딘지 모르게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골목 안쪽에서 가느다랗고 긴 짐승이 나타나더니 그녀가 걸어간 발자취를 거꾸로 되짚어오듯이 달려왔다.나와5미터 정도 떨어진 가로등 밑에 웅크리고 앉은 짐승은 머리만 이쪽으로 내밀었다.그러더니 새하얀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도 없이 웃어 댔다. - 208p이 소설에서 가장 소름이 돋았던 부분.‘기담’이라는 단어의 뜻에서 나는‘이상하다’라는 느낌의 비중이 클 것이라고 누누이 생각해왔기에,역시 공포스러운 부분이 나올 것이라고 어렴풋이 예상 하긴 했다.세 번째 단편소설‘마’에서는 다른 단편에도 언급되었던 몸이 가느다랗고,재빠르게 움직이고,머리가 사람을 닮았으며 눈이 이상야릇한 짐승을 직접적으로 보고,주인공 나름의 방법으로 처단하는 내용이 나오는데.짐승이 소리도 없이 웃는 저 장면에선 짐승이 상당히 지능이 있고 왠지 굉장히 흉악하다고 느껴져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유령이나 귀신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의 머리를 단 짐승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늘 그렇듯 짐승은 내 앞에서 걸어갔다. - 228p이 책의 특징이자 내가 느낀 아쉬운 점은,모든 단편의 결말이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역자 이영미 씨가 쓰신 후기에선 결말을 상상할 수 있는 게 더욱 매력이지 않느냐 라고 하셨는데,결말이 확실한 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썬 역시나 조금씩 피어오르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내가 상상한 것이 맞는지,아니면 다른 결말이 있는지,내가 놓친 것이 있는지.유감스럽게도 이런 열린 결말 소설을 즐길 만큼 아직 커다란 인간이 되진 못한 것 같다.전체적인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던 소설.감각적인 묘사가 많았고,또 그런 묘사를 잘하는 작가인지라 후텁지근하고 눅눅한 여름의 불쾌함을 온몸으로 느껴가며 읽을 수 있었다.그런 불쾌한 기분일수록 왜인지 이상야릇한 사건과 조우하고 싶은 묘한 욕망이 솟구치는 기분이다.필력이 괜찮고 줄거리도 흥미가 과하게 넘쳐 날만큼 재미있는 내용이 많은 소설이다.
태양의 탑 ,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의 작가
모리미 도미히코의 고혹적인 환상 기담소설

발랄하고 해학 넘치는 이야기와 정제되고 예스러운 문체로 교토 천재 , 21세기의 새로운 재능 으로 불리는 모리미 도미히코. 교토의 ‘방련당’이라는 골동품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네 편의 이야기는, 도시 곳곳에 비밀스럽게 숨죽이고 있는 서늘한 공포를 유리세공하듯 섬세한 문체로 깨워내며 읽는 이의 오감을 사로잡는다. 음산하고 낡은 고택에 사는 괴이한 여우 가면의 사내, 정체를 알 수 없는 골동품점 ‘방련당’, 어지러이 얽힌 골목들과 몽상에 빠진 청춘들……. 이 풍경들이 도시의 일상과 공포의 세계를 잇는 매개가 된다.

고택에 사는 여우 가면의 사내 아마기와 방련당 점원 무토 사이에서 이루어진 기묘한 거래를 그리고 있는 표제작 「여우 이야기」를 비롯해, 어느 날인가부터 괴이한 짐승[魔]이 마을 사람들을 습격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룬 「마」 등 작가는 끔찍하고 잔혹한 묘사만이 공포를 자아내는 장치가 아님을 증명하며,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로 독자를 매혹시킨다.

더 이상 여우에게 홀리지 않게 된 현대인을 환상의 세계로 성큼 다가서게 하는 여우 이야기 는 우리가 사는 도시의 뒷골목조차 다시 들여다보게 할 만큼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하며 새로운 공포의 공간을 우리에게 개방하고 있다.


여우 이야기
과실속의 용

수신

옮긴이의 말